
최근 들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가 부모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인 경우도 많죠. 하지만 문제는 ‘세대 차이’입니다. 조부모 세대의 훈육 방식이 오늘날의 양육 기준과 충돌하면서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부모의 훈육 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전문가 시선에서 짚어보겠습니다.
구세대 언어의 한계
조부모님들은 대체로 과거 자신의 부모에게서 배운 훈육 방식을 자녀에게 그대로 적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혼날 짓을 했으니 혼나야 한다”는 식의 훈육 철학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꾸중이나 체벌은 사랑의 표현이자 교육의 일부로 여겨졌죠. 문제는 이 방식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효과적이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대 아동 발달 연구에 따르면, 아이는 언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훨씬 섬세하고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너 그러면 진짜 혼난다”, “왜 이렇게 멍청해”, “사람 만들려면 혼나야 해” 같은 구세대 표현은 아이에게 ‘나는 잘못된 존재야’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자존감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위축된 성격, 분노 조절 문제, 사회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게다가 조부모 세대는 ‘감정’보다는 ‘행동’을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울지 마”, “그 정도는 참아야지”와 같은 말은 아이의 감정을 억압하게 만들고,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배울 기회를 빼앗는 셈이 됩니다. 현재는 감정을 인정하고 다룰 수 있는 정서 지능(EQ)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물론 조부모님들의 애정은 진심입니다. 하지만 그 애정이 올바른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과거 방식이 틀렸다기보다, 이제는 바뀐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감정폭력의 무의식적 반복
체벌이 줄어든 요즘, 훈육의 가장 큰 문제는 ‘감정폭력’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과 표정, 태도를 통해 아이를 상처 입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조부모님들의 경우, 본인도 그런 방식의 훈육을 받아오셨기에 ‘이 정도는 말이야’라는 기준이 세대 차이를 만들곤 합니다. 예를 들어, “너 그렇게 하면 진짜 미워질 것 같아”, “넌 형만 못해”, “그런 건 여자애가 하는 거 아니야” 같은 말은 아이의 자존감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표현입니다. 이런 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아이의 마음에는 깊은 흠집을 남깁니다. 부모 세대에서는 별것 아니었던 말들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감정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아이의 행동을 ‘인격’으로 해석하는 오류입니다. 실수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넌 왜 항상 문제야”, “네 성격이 그래서 그렇지”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는 자신을 ‘문제아’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반복될수록 아이의 정체성과 자아개념에 악영향을 미치며, 자기 효능감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조부모님이 이런 방식으로 훈육을 반복할 경우, 손주는 조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거리를 두게 됩니다. 특히 아이가 감정적으로 예민한 시기일수록, 한 마디 말이 평생 기억에 남는 트라우마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부모님의 말과 태도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의식적으로 돌아보는 습관’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훈육 태도가 필요합니다.
공감 훈육으로 전환하기
그렇다면 조부모의 훈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핵심은 ‘공감’입니다. 과거처럼 “혼나야 배우지”가 아닌, “왜 그랬을까?”, “그때 어떤 마음이었니?”라는 식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감 훈육’이며, 현대 양육에서 가장 강조되는 방식입니다. 공감 훈육은 잘못된 행동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이유’에 주목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짜증을 내며 장난감을 던졌다면,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돼”라고 말하기 전에 “혹시 뭐가 속상했어?”라고 묻는 식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방어심을 내려놓고, 행동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또한, 공감 훈육에서는 ‘감정 언어’ 사용이 중요합니다. “화났구나”, “속상했겠구나”, “그럴 수 있지” 같은 말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이는 정서 조절, 자기 통제력 발달,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조부모님들께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이 ‘공감 표현’입니다. 예전에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다루는 문화가 부족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며, 아이와의 관계를 훨씬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부모가 아이와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훈육보다 공감이 먼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훈육은 관계를 기반으로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공감이 없는 훈육은 단지 지적일 뿐이며, 아이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공감이 기반이 된 훈육은 아이가 스스로 반성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조부모님은 오랜 경험과 지혜를 지닌 든든한 양육 파트너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아이들의 감정과 발달 환경도 달라졌습니다. 그렇기에 조부모 세대의 훈육 방식도 이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손주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과거의 방식이 아닌 지금의 아이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감정 대신 공감으로, 비교 대신 존중으로, 꾸중 대신 대화로 훈육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부모와 조부모가 함께 이해하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나누는 말 한마디, 훈육의 방식 하나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